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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事

명박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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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산성
(한자: 明博山城)은 2008년 6월 10일 6.10 민주화 항쟁 21주년을 맞아 한미 쇠고기 협상 내용에 대한 반대 시위의 일환으로 서울 도심에서 100만 촛불 대행진이 계획되자, 경찰이 시위대의 청와대 진출과 전경과의 대치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도심 곳곳에 설치한 컨테이너박스 바리케이드를 뜻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네티즌과 시위대가 풍자의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지만, 신문 기사 등에서 인용하면서[1]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주요 외신에도 컨테이너 장벽의 사진이 보도되었다.


광종(狂宗)(연호:조지) 부시 8년(戊子年)에 조선국 서공(鼠公) 이명박이 쌓은 성으로 한양성의 내성(內城)이다.
성(城)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당시 육조거리에 막아놓은 기대마벽(機隊馬壁)이 백성들에 의해 치워지매, 그에 대신하여 보다 더 견고한 철궤로 쌓아올린 책(柵)에 불과하다.
이는 당시 서공(鼠公)의 사대주의 정책과 삼사(三司:조선,중앙,동아) 언관들의 부패를 책하는 촛불민심이 서공의 궁(宮)으로 향하는 것을 두려워 만든 것이다.
무자년(戊子年) 유월(六月) 패주(敗主) 두환을 몰아낸 일을 기념하여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자 한성부 포도대장 어(魚) 아무개의 지시로, 하루 밤낮만에 쌓아올려져서 길 가던 도성의 백성들이 실로 괴이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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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경찰은 새벽부터 세종로 충무공 동상앞에 컨테이너 박스를 2단으로 쌓아 바리케이드를 설치하였으며, 그밖에도 안국로 등 청와대로 진입할 수 있는 길목에 총 60여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사용하여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이 바리케이드는 컨테이너 박스를 2단으로 쌓고, 바닥에 철심으로 고정시킨 뒤 용접한 것으로 2005년 11월 부산 APEC 정상회의 당시 반세계화 시위대의 정상회의장 진출을 막기 위해 처음 사용된 방식이다.

바리케이드는 다음날인 6월 11일 오전에 모두 철거되었으나, 경찰은 다음 촛불 집회에서도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2]

비판

  • 경찰은 집회가 저녁 7시부터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컨테이너 박스의 설치를 시작해 서울 도심의 극심한 교통 체증을 유발한데다, 시위대가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며 컨테이너에 그리스를 바르고 그 위에 태극기를 걸어 화재의 위험과 국기 훼손 등으로 빈축을 샀다.
  • 경찰은 기자가 바리케이드를 기사에 첨부하기 위해 촬영하는 것은 허용하면서 개인적으로 촬영하려는 시민들은 제지하는 이중 잣대를 적용했다. 시민들은 컨테이너 박스 주변에 ‘경축! 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현수막을 걸었으며, 대통령 이명박을 반대하는 구호가 담겨있는 스티커를 붙이기도 하였다.
  • 세종로 주변의 문화재 주변에 법적 승인 없이 건조물을 설치한 것은 문화재관리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다.[3]

참고 자료와 주석

  1. 컨테이너 장벽의 별명은 ‘명박산성, 중앙일보, 2008년 6월 10일. 이 외에도 다수.
  2. 조롱받는 ‘컨테이너 장벽’…경찰 재사용 검토, 경향신문, 2008년 6월 11일
  3. 황평우 "컨테이너 차벽은 문화재보호법 위반", 노컷뉴스, 2008년 6월 11일

같이 보기

바깥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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