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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事

'임계점'을 향해 다가가는 촛불문화제를 바라보며


하나 -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제가 이런 말을 한다면 저에 대해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비폭력주의자는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최후의 수단으로서의 물리력은 용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차원에서 비폭력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죠. 따라서 저는 무조건적인 비폭력은 절대 권장하지 않지만, 폭력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두 가지 전제 조건이 붙습니다. 첫째로는 먼저 폭력을 사용하지는 말아야 하며, 둘째로는 자신을 지키는 데에만 폭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연 : 요즘 간간이 자게에서도 나오는 저항권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지금의 촛불문화제에 대해 비유를 들자면, 물이 끓어 넘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봅니다.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고 끓이면 물이 서서히 기포를 내면서 끓고, 그러다가 나중엔 김을 내면서 끓어오릅니다. 이런 때에 뚜껑을 열어 주지 않거나 불을 꺼 주지 않으면, 주전자에 있는 물은 곧 팽창하여 끓어 넘치게 되죠. 지금 촛불문화제의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조용조용히 이야기하다가 촛불을 들었고, 촛불로도 안 되어 거리로 나섰고, 거리로 나서도 안 되니 청와대까지 갔습니다. 사람들의 의지로요. 이렇게 서서히 임계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와중에 청와대 앞까지 갔는데, 이제 청와대까지 가도 안 되었고 도리어 군화발과 방패와 물대포와 주먹질이 날아왔습니다. 끓어 넘치기 일보 직전까지 간 것이고, 이미 어디에서는 끓어 넘치고 있습니다. 4.19나 6월 항쟁처럼 '저항권'을 발동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직은 - 기본적인 비폭력 기조는 어제처럼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폭력이 기반으로 되어 있어야 정권의 주구가 되어 무기조차 들지 않은 시위대에 경찰 특공대까지 동원하는 정권의 압력에 "끓어 넘치게 되어" 정당 방위식 폭력을 휘두르게 되었을 때 저항권을 발동했다고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상대가 폭력을 썼다고 '그래? 이제부터 비폭력은 없다'라면서 행동하거나 어떤 펌글에 적힌 것처럼 일부 물리력을 앞세우는 사람들에게 휩쓸린다면 결국 상대도 더 많은 폭력으로 나오게 되고, 폭력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면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목적을 이룬다 해도 더 많은 사람이 불행해지고, 상처를 입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서히 끓어올라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가 나서니까 같이 따라가'(이 말이 선동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항권을 발동하는 게 아니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아가' 저항권을 발동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이 촛불문화제가 '처음 시초는 학생들이었지만 이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아갔던 것처럼'말이죠. 그렇게 하여 이 패역한 정부가 국민의 말을 듣게 하든지, 아니면 끌어 내려서 다시는 국민을 거역하는 위정자가 권력 근처에 다다르지도 못하도록 단죄를 내리든지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저는, 그 임계점이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저의 마음도 잘 모르는 제가 시위에 나선 이들의 마음의 흐름을 어찌 읽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저는 지금 시위에 나선 이들이 그 임계점을 향해, 즉, '끓어 넘치는' 시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위정자들은 불을 줄이던가, 주전자 뚜껑을 열어 끓어 넘치는 것을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민심을 읽는 데에 실패하고 있으며 오히려 폭력진압이라는 장작을 불 속에 가득가득 넣어 주고 있는 격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국민을 기만하는 방법조차도 잃어버린 무능력자들일 뿐이라서(차라리 기만으로 따지자면 위정자들보다는 조중동이 몇 수 위죠) 지금의 흐름이 끓을 일은 있어도 식을 일은 없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누가 분란을 일으켜 국민들을 와해시키려 하거나 그 곳에 참여하는 단체들이 자기들이 앞장서서 나발불려 하지 않는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끓어 넘치게 될 것이라 봅니다.

다만 바라는 것은 그 임계점이 왔을 때, 4.19나 5.18의 희생자들처럼, 그리고 87년 6월의 이한열씨같은 사람들처럼 피 흘리는 이들이 없기를, 아니, 있어도 그 수가 적기를 바랄 뿐입니다. 피와 함께 스러진 생명의 안타까움, 그리고 그 생명의 스러짐과 함께 주어지는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란 것은 민주주의라는 선물이 얻어진다 해도 그 선물만큼이나 가혹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 - 촛불문화제에 대한 변명


"소고기 때문에 일어난 시위인데 정부 퇴진을 외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에 대한 변명

처음부터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명박 OUT''독재타도' 만을 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닙니다. 그들이 처음 외친 것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미친 소 너나 먹어'라는 말처럼 그들은 국민의  재협상 요구, 국민 건강권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국민을 더더욱 무시하고, '좋은 고기 싸게 먹게 되었다'라거나, 광우병 및 소고기 협상에 대한 진실은 숨기면서 그것을 '괴담'이라는 어이없는 용어로 폄하했고, 시민들이 자진해서 나선 촛불문화제에 대해서는 배후를 논했으니 이래저래 민심과 동떨어진 소리만 한 셈이죠.

말만 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촛불문화제를 대하는 위정자, 교육자 및 경찰들의 행동 역시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뭘 모른다고 폄하하는 것도 모자라 수업시간에 끌어내서 조사하고. 아이들을 단속한다고 교감선생님 900명 가량을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신상파악까지 지시했습니다. 게다가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이들을 빙 둘러싸 포위한 뒤 해산하라는 식으로 말하는 눈가리고 아웅식 진압을 하기도 했고 지금도 명분은 도로점거이지만 실제로는 차도이건 인도이건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폭력진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거나, 지지를 보내는 이들은 자연히 문제제기 및 분노의 대상이 확대되었고, 촛불문화제 이전보다 정부를 더더욱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소고기 문제 이전부터 마음 속에 켜켜이 쌓아 두었던 정부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마침내 국민들이 노골적으로 내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촛불문화제에서 소고기 이야기가 나오다가 정권 퇴진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은 문제의 확대나 확산의 측면이라고 보면 모를까. 본질 왜곡이라고 볼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문제 범위의 확대가 발생하게 된 과정과 이에 수반된 부자연스럽고 비민주적인 위정자 및 공권력들의 행동에 대한 이해 없이 '소고기 문제 일어나자 촛불을 들었는데 이젠 소고기 이야기 나오지 않고 이명박 물러가라는 이야기 나온다'라는 이유로 '본질 왜곡'이라고 문제를 삼는다면, 저는 그것이 오히려 본질 왜곡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소고기 이야기에서 정권 퇴진 이야기가 나오기까지의 원인 제공을 거의 모두 정부와 그 위정자들이 했는데도 시위에 나선 이들이 본질을 왜곡했다는 소리가 들려오는 건, 너무 어처구니없을 뿐만 아니라 가혹하기까지 하다고 봅니다.


"출범한지 100일도 되지 않은 정부에 대해 좀 시간을 주거나, 믿고 맡기면 안 되나?" 에 대한 변명

뉴스기사 및 신문, 방송을 보았다면 인수위 때부터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의 주요 요인들 및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빼놓지 않고 하는 소리가. '믿고 맡겨주고 우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와 달라'라는 것을 기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적어도 선거 전에는 - 그것이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바벨탑이었다는 것을 모르든, 알고 있었든 간에 - 이명박 후보가 신화적 인물이라 믿었고, 마치 왕처럼 강한 대통령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사실 지지할 만큼 지지했습니다. 대운하니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니 하는 막돼먹은 행동들을 보고서도 바뀐 정권에서 일 좀 잘 하라고 한나라당을 과반으로 밀어줬습니다. 시간도 줄 만큼 줬습니다. 더 참을 수 없어 촛불을 들고 모이긴 했지만 고시를 하기 이전까지 시민들이 외친 것은 '이명박 물러가라'보다는 '재협상'이었고 '건강권 보장'이었으며 '미친 소 너나 먹어'였습니다. 집단 행동으로 나섰지만 그래도 국민의 말을 들어주기를 원했다는 것이죠. 물론,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대운하 숨바꼭질도 참았고 고유가도 참았으며 사교육 강화도 참았고 고소영 강부자 내각도 참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간도 줄 만큼 주고 지지도 줄 만큼 줬고 참을 만큼 참았는데 소고기 협상마저 이렇게 깽판을 쳐 놓았고, 결국 국민이 바라지 않는 고시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러니 '뽑아놓고 보니 아니올시다'라는 판단이 생기는 것이죠.


숨쉴 틈 없이 일은 하는 것 같은데 국민이 나가는 방향과 반대로 합니다. 고소영 강부자들만 뽑아 놓고 말도 안되는 두잉 베스트를 말했고,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에 무능으로 판정 난 장관 그대로 임명했으며, 대운하는 숨바꼭질 하듯이 선거와 같은 민감한 사안을 피해 음험하게 추진하고 있고, 소고기 문제는 국민을 속인 것이 지금까지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거기에 그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거세집니다. 우라늄 핵분열은 반감기라도 있는데 이건 날이 갈 수록 삽 푸는 속도가 두 배 이상으로 빨라집니다. 결국 국민은 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 돌아버리죠.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의 위정자들을 향한 반대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은, 시간을 주지 않은 국민들 탓이 아니라 숨쉴 틈도 없이 국민이 원하는 것과 반대로 나가는 짓만 계속해 온 정부와 위정자들의 탓입니다.


"우리 손으로 뽑아서 권력을 위임한 것이기 때문에 이의제기하거나 끌어내릴 자격이 없다" 에 대한 변명

제 기억으로 FREE BBS에 어떤 분이 - 요즘 하도 많은 글을 봐서 글인지 리플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 '국가의 정책을 국회의원과 행정부에 위임한 이상 국가의 정책에 일반시민들이 이의를 제기하기란 어렵습니다.'라고 한 것을 기억합니다. 하기야, 물론 일개 국민이 권력을 위임받은 이들에 의해 현실적으로 이의제기를 하는 데에는 여러 불편한 점이 있지요. 그러나 이 말이,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가르키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것이 '법칙'이거나 '정답'이라는 주장이라면, 그것은 정답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은 대통령, 국회의원, 행정부 등의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정책을 펴고 있는지 항상 살피고 감시할 권리가 있으며, 위정자들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항상 의견을 수렴하여 국민의 뜻에 맞추어 정책을 보완, 수정, 결정, 폐지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뜻과 다른 정책에 대해 국민은 비판할 수 있고,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니까요. 그렇기에 한 번 국민이 권한을 위임했다고 권한을 위임한 위정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어렵다 한다면 그것은 왕정이나 귀족정에서나 해당되는 이야기이지, 민주주의에서 할 말은 아니라 봅니다.

물론 국민들은 그런 막돼먹은 위정자를 뽑아 놓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시위에 참여하는 분들이 지금 피와 땀을 뿌려 가며 시위를 하는 것 역시 국민들 스스로 그 '책임'을 지는 방법에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잘못된 정신을 가진 위정자들에게 권력을 위임했을 때에 그들이 국민들 목소리를 다시 듣도록 하려면 이런 희생을 감수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니까요.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두산 백과사전에 보면 민주주의의 필수 요건은 다음의 여섯 가지로 대개 나눌 수 있다 했습니다.

첫째, 국민은 1인 1표의 보통선거권을 통하여 절대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적어도 2개 이상의 정당들이 선거에서 정치강령과 후보들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국가는 모든 구성원의 민권(民權)을 보장하여야 하는데, 이 민권에는 출판 ·결사 ·언론의 자유가 포함되며 적법절차 없이 국민을 체포 ·구금할 수 없다.
넷째, 정부의 시책은 국민의 복리증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다섯째, 국가는 효율적인 지도력과 책임 있는 비판을 보장하여야 한다. 정부의 관리들은 계속적으로 의회와 언론에서 반대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시민은 독립된 사법제도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여섯째, 정권교체는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책임 있는 비판'과, '계속적으로 반대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하며, '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 등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봅니다.


셋 - 위정자들의 변화 가능성은 있는가?

지금 민심 수습책이 정부 곳곳에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장관 경질 이야기도 나오고, 유가 관련 대책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썰'들이 사실이 된다 해도, 저는 지금의 위정자들이 내놓는 대책으로는 국민을 만족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정자들 자신의 '본질적 변화 가능성 역시 없다'라는 쪽에 걸겠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① 거론되는 수습책이 현재의 국민들의 바람과 극히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문제는 대통령 자신에게 있습니다. 특히 -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문이지만 - 이명박 대통령 자신도 5월 22일에 사과를 했을 당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자인한 상황이며 그 유명무실한 사과문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의 인사, 외교, 대운하, 소고기 협상, 당내 갈등 등의 굵직한 사건들에 있어서 이명박 대통령이 직, 간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사건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국민의 민심을 알지 못하는 것도, 대통령 앞에 No라고 말할 소신도 능력도 없는 것도 지금의 대통령 및 위정자들의 문제이고, 그 문제의 중심엔 이명박 대통령이 있는 것입니다.

반면 주무부처인 장관 및 수석들의 행동은 그야말로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습니다. 장관들의 경우 내정자 시절부터 하도 많은 망령된 언행을 양산해 내서 구체적인 예는 들 필요도 없을 정도입니다. 어쨌거나,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이들을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사람들로 여기긴 하지만 이런 행동을 이들이 독자적으로 했거나 이 행동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는 않게 되고, 실질적으로는 장관이나 수석은 이명박 대통령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게 되었죠.

무엇보다 장관, 수석들을 짜른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해 놓은 삽질이 거둬들여지지 않는다는 점 역시 인책을 한다고 해도 국민들의 바람과 동떨어지게 되는 이유입니다. 장관을 짜르면 소고기 협상이 재협상이 가능한가요? 아니잖습니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빨리 귀를 열고 대응했었더라면 장관 경질 정도로도 미봉이나마 할 수 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의 근원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 정설인 이상 이젠 장관 몇 명 자르는 정도로는 수습책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고, 촛불을 자진해서 끄도록 하지도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② 대화할 줄 모르고 나눌 줄 모르는 것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엄연히 정당정치를 하는 대한민국이건만 야당이나 그간 정부의 삽질로 인해 고통받은 농민 등의 이익단체 등과의 대화도 하지 않고, 한나라당과 정부에서 협의하여 수습책을 내놓는 형식만으로도 매우 틀려먹은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를 국민과의 소통의 부재 운운하는 식으로 원인파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국민들이 느끼는 '소통의 부재'가 위정자들이 귀를 닫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인데, 이명박 정부는 이 문제를 거꾸로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오버마인드 격인 최시중씨를 이용해 방송과 미디어를 장악하려 하는 것도 모자라, 쇄신안 중에 보면 홍보 관련 수석을 임명할 거라는 소리가 있죠. 자고로 대화를 하는 데에 있어서는 '말은 될 수 있는 한 적게 하고 듣는 것은 될 수 있는 한 많이 하라'는 것이 대화의 기술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건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막힌 귓구멍은 뚫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입만 더 크게 찢어놓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이래가지고는 대화할 줄 모르는 것은 달라질 게 없지요.

나눌 줄 모르는 문제는... 뭐 당내갈등도 마무리짓지도 못하는 양반들에게 뭘 기대할까요. 지금은 더 말하기조차 귀찮습니다.


③ 개념 없고 망령된 언행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영부인 김윤옥 여사의 '자랑스런 이화인상'에 항의하는 이화여대생들을 경찰이 과잉진압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 일에 대해 이화여대 학생들이 분노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분노는 단순한 과잉진압에 의한 것만이 아닙니다. 물론 단식 중인 사람까지 미는 등 과도한 물리력을 동원했다는 점이나 성추행 관련 문제도 있지만, 그 분노의 근원에 대해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화여대가 '금남의 구역'이라는 암묵적 개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그 '금남의 구역'에 사복경찰 및 경찰단이 침입했다는 것은 외부인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 과잉진압 및 성추행에 관계없이 그 일 자체만으로도 - 이화여대라는 내부의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개념 자체를 손상시키는 일로 취급되게 됩니다.

아실테지만, 사람이 상처를 입는 것은 반드시 어디를 맞고 쥐어 터져야 상처를 입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묵계가 파괴되었을 때, 그들은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고 이화여대 사건 역시 그런 점에서 해석해 보면 공권력은 이화여대를 거듭 능멸한 셈이죠. 경찰의 물리력을 사용한 진압도 문제였고, 성추행도 문제인데 거기에 금남구역이라는 이화여대의 '묵계'를 짓밟았다는 점에서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그 자리가 하필이면 '자랑스런 이화인상'을 주는 곳이었으니 아이러니함을 넘어서 아스트랄한 일이죠.

그 외에 뭐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한다고 해 놓고 소고기 괴담 운운하는 소리를 하여 공분을 산 것이나,
얼마 전 김문수 도지사가 광우병 괴담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식의 아스트랄한 말을 한 것,
그리고 잊을 만 하면 이어지는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관련 망언에 분노를 느끼는 것.

이 세 경우의 공통점은, '개념이 없거나 있어도 한참 뒤떨어지는 소리' 라고 생각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개념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에게도 이해가 안 되는 무개념 행동들이 계속 일어난다면, 이것에 대해 아무리 '달라졌다'한들 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게다가. 실상이 달라지지도 않은 상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맺음말


지금까지 여러 부분에서 느낀 점을 주저리주저리 읊어 봤습니다. 무려 자신들을 '국민의 머슴'이라고 칭한 그들이 주인을 배반하고 주인의 말에 항명하고 있는 지금의 상태가 더 지속된다면 또 한번의 항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란 불안감이 계속해서 듭니다. 아니, 이미 항쟁은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항쟁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불안해하지는 않습니다. 두렵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것으로 인해 벌 받아야 할 사람은 벌 받지도 않는 부당함 속에서 다치는 이들이 안타깝고, 목숨을 잃는 이들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 그리고 몇몇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중요한 추가 변수로 6월 4일의 재, 보궐선거가 있을 것입니다만 그것이 여당에게 타격을 준다 해도 본질적 변화를 위정자들에게서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 타격에 본질이 변할 만큼 귀가 얇은 족속들이 아닐 뿐더러, 제 생각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위정자들의 본질적 변화 가능성이 없다는 점 때문이죠.

더군다나 만에 하나 한나라당이 다수 승리하거나 선방하게 된다면 지금 거리로 나선 시민들을 어떻게 취급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재, 보궐선거는 국민들의 움직임을 악재로 돌아서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선거에 대해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선거에 영향을 줄 능력도 없는 제가 선거에 영향을 준다는 되도 않는 오해를 하는 이들이 있을 뿐더러(PGR 내에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오해는 트럭으로 갖다준다 해도 더 이상은 받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촛불문화제 초기라면 모르되 이미 불신이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다다라 가고, 동료와 친구들이 경찰의 물대포와 군화발과 방패에 얻어맞는 모습을 본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국민들이 이미 겉보기 해결책만으로는 성에 안 차는 지경이 되어버렸으니 선거에서 여당이 이기든 지든 그들이 내놓는 겉보기 쇄신안 정도로 성에 차지 않을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따라서 아직도 갈 길은 멀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이 나라가 어디로 가게 될는지 걱정입니다. 바깥에는 낮 또는 이른 저녁이나 간간이 들르는 주제에 말만 많아 미안합니다.

평안하십시오. 그리고 무사하십시오.


- The xian -

출처 : www.pgr21.com